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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스토리 단편 | 심연의 맹세·불씨
천 년 후, 심연 위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났습니다.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뿌리는 공허에 박혀 있었지만, 가지는 인간 세상을 향해 뻗어 나왔고, 잎사귀는 응고된 불꽃 같았습니다. 나무 아래에는 눈먼 소녀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을 '불씨'라고 소개하며, 재 그림자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라고 했습니다. "또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야?" 지나가던 여행자가 그녀가 허공에 대고 혼잣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연이요." 불씨는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나무뿌리를 가볍게 두드렸습니다. "오늘 너무 지루하다면서, 이야기를 듣고 싶대요." 여행자는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심연이 말을 해요?" "그럼요." 불씨는 고개를 갸웃하며 무언가를 듣는 듯했습니다. "자기가 예전엔 늑대였다고 해요. 아주 배고프고, 아주 화나고, 아주 외로운 그런 늑대였다고요. 그러다 여기로 뛰어내렸고, 지금의 모습이 되었대요." 여행자는 몸을 숙여 나무줄기를 만져보았습니다. 나무껍질은 따뜻했고, 심장 박동 같았습니다. "그거 후회하나요?" 불씨는 한참 동안 침묵했습니다. 심연도 침묵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고개를 들었고, 눈먼 눈동자에는 별빛이 비쳤습니다. "후회는 살아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거라고 해요. 자기는 이제 그런 자격이 없대요. 하지만 아깝지는 않다고 합니다." "왜요?" "왜냐하면," 불씨는 손을 나무에 대고, 목소리는 아주 작았습니다.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에서 울 때마다, 자기는 그걸 듣는다고 해요. 그걸로 충분하대요." 여행자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무줄기에 기대앉아 눈을 감았습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며 낮게 웅웅거렸습니다. 늑대 울음소리 같기도 했고, 자장가 같기도 했습니다. 심연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무의 잎사귀 전체가 동시에 반짝였습니다.
2026.09.17 오후 3:48 · 조회 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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