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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26.08.11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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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하로

지유롭게 여러분들이 아시는 역사 내용 올리거나 다른 분들이 올린 역사 내용 교차검증 해주시는 등 자유롭게 올리거나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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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52

JYOONiii

한나라 대군을 무릎 꿇릴 뻔한 고조선의 저력

당대 세계 최고 제국이었던 한나라 무제는 수륙 양면으로 대군을 보내 고조선을 침공했습니다. 하지만 고조선은 1년이 넘도록 수도 왕검성을 철통같이 방어하며 한나라군을 연달아 격파했습니다. ​결국 고조선은 무력으로 정복당한 것이 아니라 내부 분열과 배신으로 무너졌습니다. 전쟁 후 한 무제는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손실을 입힌 책임을 물어 자국 정벌군 장수들을 사형에 처하거나 처벌했습니다. ​신화 속 국가로 여겨지곤 하는 고조선이 사실은 당대 초강대국과 대등하게 맞섰던 강력한 국가였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2026.10.05 오후 3:20 · 조회 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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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52

JYOONiii

동아시아 최고의 공예품, 백제금동대향로

1993년 부여 능산리 고분군 인근의 주차장 공사 현장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유물이 발굴되었습니다. 바로 '백제금동대향로'입니다. ​진흙 속 밀폐된 환경 덕분에 1,400여 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완벽한 보존 상태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용이 연꽃 봉오리를 받친 형상 위에 신선들이 사는 봉래산과 5명의 악사, 그리고 수많은 동식물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불교와 도교 사상이 절묘하게 융합된 이 향로는 백제의 독창적이고 뛰어난 금속 공예 기술과 높은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최고의 걸작입니다.

2026.10.04 오후 3:34 · 조회 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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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52

JYOONiii

당나라 본토를 선제 공격한 발해

발해는 당나라의 압박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기만 한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2대 무왕 시절, 당나라가 주변 세력과 연합해 발해를 고립시키려 하자, 발해는 당나라 본토를 선제 공격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732년, 장문휴 장군이 이끄는 발해 수군은 산둥반도의 요충지인 등주를 전격 습격하여 당나라 산둥 장관을 전사시키고 등주성을 함락했습니다. ​이는 우리 역사상 유일하게 중국 본토를 먼저 공격해 큰 승리를 거둔 해전 기록으로, 발해의 강력한 국력과 당찬 패기를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2026.10.03 오후 6:38 · 조회 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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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52

JYOONiii

신라 시대에도 얼음 저장 창고가 있었다

여름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현대인처럼, 신라시대 사람들도 한여름에 시원한 얼음을 먹었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석빙고(石氷庫)에 있습니다. 전기나 냉동고가 없던 시절, 신라인들은 겨울철 강가에서 채취한 자연 얼음을 석빙고에 보관해 한여름까지 녹지 않게 유지했습니다. 석빙고의 핵심은 과학적인 내부 구조입니다. 외부의 열을 차단하기 위해 이중 아치 구조로 천장을 만들고, 그 위에 흙과 잔디를 심어 열 전달을 막았습니다. 또한 내부에서 발생하는 따뜻한 공기는 위쪽의 환기구로 자연스럽게 배출되고, 얼음이 녹아 생긴 물은 경사진 바닥 배수로를 통해 즉시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설계했습니다. 조상들의 지혜와 뛰어난 건축 과학이 만들어낸 고대판 '천연 냉장고'였던 셈입니다.

2026.10.02 오후 7:26 · 조회 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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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52

JYOONiii

조선의 소방관

600년 전 조선시대에 이미 세계적 수준의 '전업 소방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1426년(세종 8년) 큰 불로 도성이 피해를 입자,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소방 조직인 '멸화군(滅火軍)'을 창설했습니다. ​24시간 대기 체제로 운영된 멸화군은 망루에 올라 밤낮으로 화재를 감시하고, 갈고리와 물통 등 전용 소방 장비를 갖추어 불이 나면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습니다. ​화재 예방과 인명 구조를 전담하는 정규 소방관을 국가 차원에서 24시간 배치해 운영한 것은 당대 세계적으로도 매우 보기 드문 앞선 시스템이었습니다.

2026.10.01 오후 8:29 · 조회 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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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52

JYOONiii

조선 선비들의 상상을 초월한 가체 무게

조선 시대 영·정조 이전 양반가 여성들 사이에서는 '가체(다리)'를 크고 높게 올리는 것이 최고 부의 상징이자 유행이었습니다. 가체의 가격이 집 한 채 값에 맞먹을 정도로 비쌌을 뿐만 아니라, 그 무게 역시 보통 3~4kg에서 심한 경우 5kg이 넘을 정도로 어마어마했습니다. 이로 인해 가체에 눌려 목뼈가 부러지거나 건강을 해치는 안타까운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결국 가체 때문에 목숨을 잃는 일까지 일어나자, 정조 임금은 사치 풍조를 막고 백성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가체를 법으로 금지하는 '가체 금지령'을 내리고 족두리로 양식을 바꾸도록 명령했습니다. 화려함을 향한 욕망이 목숨까지 위협했던 조선판 fashion의 그늘이었던 셈입니다.

2026.09.30 오후 2:33 · 조회 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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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52

JYOONiii

조선의 출산휴가

600년 전 조선시대에 이미 남성 육아휴직과 여성 출산휴가 제도가 시행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세종대왕은 관노비 여성에게 출산 전후로 총 130일의 출산휴가를 부여했습니다. 당시 최하층 신분이던 노비라 할지라도 생명의 소중함은 다르지 않다는 세종의 애민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산모의 회복과 육아를 돕기 위해 그 남편인 남자 노비에게도 30일간의 '남성 육아휴직'을 지급했다는 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제도적 정착을 논의하는 남성 육아휴직이 15세기 조선에서 노비 계층에게까지 보장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2026.09.29 오후 8:39 · 조회 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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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52

JYOONiii

수석 합격 논란

당나라 조정에서 신라와 발해의 유학생들이 벌인 치열한 '장원 급제 외교전'을 아시나요? ​당나라의 외국인 전용 과거 시험인 '제술과'에서 발해 유학생 오소도가 신라를 제치고 수석을 차지하자, 신라는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신라 조정은 "어떻게 발해인이 신라보다 높은 석차를 받을 수 있느냐"며 당나라에 등수를 바꿔달라는 공식 항의문까지 보냈습니다. ​대륙을 호령하던 군사력뿐만 아니라, 당나라 유학길까지 접수할 정도로 뛰어난 학문적 역량을 갖췄던 발해의 모습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입니다.

2026.09.28 오후 10:27 · 조회 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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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NEERLv.73

갈라파고스거북

전쟁이야기 - 애틀란타로의 행군 5편 애틀랜타의 함락

8월에 들어서자 셔먼은 애틀랜타를 직접 공격하는 대신 남군의 보급선을 완전히 끊는 작전을 선택했다. 애틀랜타는 철도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급로가 차단되면 남군은 도시를 계속 방어하기 어려웠다. 셔먼은 8월 25일부터 병력을 남쪽으로 크게 이동시켜 애틀랜타와 연결된 철도를 공격했다. 8월 31일 존스버러에서 북군과 남군이 충돌했고, 북군은 남군의 철도 보급선을 끊는 데 성공했다. 더 이상 애틀랜타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후드는 9월 1일 밤 도시에서 철수했다. 다음 날인 9월 2일 셔먼의 북군이 애틀랜타에 진입하면서 약 4개월에 걸친 애틀랜타 전역이 사실상 끝났다. 애틀랜타 함락은 남부의 중요한 산업·철도 중심지를 잃게 만든 사건이었다. 동시에 북부에서는 링컨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높이는 정치적 의미도 컸다. 셔먼은 이후 애틀랜타를 출발해 대서양 연안으로 진격하는 ‘바다로의 행진’을 시작하며 남부의 전쟁 수행 능력을 더욱 약화시켰다 다음은 남북전쟁의 마지막을 다뤄볼겁니다!

2026.09.28 오후 3:18 · 조회 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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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NEERLv.73

갈라파고스거북

전쟁이야기 - 애틀란타로의 행군 4편 후드의 반격과 애틀랜타 포위

7월에 접어들면서 북군은 애틀랜타 외곽까지 접근했다. 그러나 남부연합의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은 계속 후퇴하는 존스턴의 지휘에 불만을 품고 그를 해임하고 존 B. 후드 장군을 새로운 테네시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후드는 방어만 하기보다 적극적인 공격을 통해 셔먼의 진격을 저지하려 했다. 7월 20일 피치트리 크리크 전투에서 후드는 북군을 공격했지만 북군의 방어선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이어 7월 22일 애틀랜타 전투에서 후드는 맥퍼슨이 지휘하던 북군의 측면과 후방을 공격했다. 남군은 격렬한 공격을 펼쳤고 북군 지휘관 맥퍼슨이 전투 중 전사하는 큰 피해도 발생했다. 그러나 북군은 방어선을 유지했고 남군의 공격은 실패했다. 셔먼은 이후 애틀랜타 서쪽으로 병력을 돌려 남군의 마지막 철도 보급선을 끊으려 했다. 7월 28일 에즈라 처치에서도 남군의 반격이 있었지만 북군은 이를 격퇴했다. 이제 애틀랜타는 점점 외부와 고립되어 갔다.

2026.09.28 오후 3:17 · 조회 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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