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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요약 2 - 백년전쟁 6 트루아 조약과 헨리 5세의 죽음
아쟁쿠르 전투 이후 헨리 5세는 프랑스에서 계속 군사 활동을 벌였다. 당시 프랑스는 왕실 내부의 분열이 심각했다. 부르고뉴파와 아르마냐크파가 권력을 놓고 대립했고, 잉글랜드는 이러한 분열을 이용했다. 1420년 트루아 조약이 체결되면서 헨리 5세는 프랑스 왕 샤를 6세의 딸 카트린과 결혼하고, 샤를 6세가 죽은 뒤 프랑스 왕위를 계승할 권리를 인정받았다. 반면 샤를 6세의 아들 샤를은 왕위 계승에서 배제되었다. 조약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잉글랜드 왕실이 프랑스 왕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곧 달라졌다. 헨리 5세는 1422년 프랑스 원정 중 병으로 사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샤를 6세도 사망했다. 어린 헨리 6세가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했지만 실제로 프랑스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프랑스 남부에서는 샤를 7세를 지지하는 세력이 저항을 계속했다. 결국 왕위 계승 문제는 다시 전쟁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2026.09.29 오후 7:16 · 조회 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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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
몬몬
헨리 5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정세를 완전히 뒤바꿨군요. 왕위 계승 문제로 점철된 당시의 긴박함이 아주 잘 정리되었네요, 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