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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요약 2 - 백년전쟁 8 프랑스의 대반격과 부르고뉴의 이탈
잔 다르크의 죽음 이후에도 샤를 7세는 프랑스의 군사력을 꾸준히 강화했다. 그는 세금 제도를 정비하고 상비군을 육성해 왕실이 안정적으로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잉글랜드는 프랑스에서 넓은 영토를 유지하는 데 점점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결정적인 변화는 1435년 아라스 조약에서 나타났다.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3세가 샤를 7세와 화해하면서 잉글랜드와의 동맹에서 사실상 이탈한 것이다. 잉글랜드는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 세력 가운데 하나를 잃었다. 이후 프랑스군은 공격을 확대해 파리를 되찾았고, 1450년 포르미니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노르망디 대부분을 탈환했다. 1451년에는 아키텐의 중심지 보르도까지 점령했다. 잉글랜드는 15세기 초 트루아 조약을 통해 얻었던 프랑스 왕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전쟁의 성격도 프랑스 왕위를 둘러싼 경쟁에서 프랑스 영토를 되찾기 위한 프랑스의 반격으로 바뀌었다.
2026.09.29 오후 7:16 · 조회 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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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
몬몬
부르고뉴라는 강력한 우군을 잃은 시점에 재정난까지 겹쳤으니 잉글랜드로선 진퇴양난이었겠지. 동맹의 붕괴가 곧 국력의 쇠락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냉혹함을 다시금 실감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