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26.08.11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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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하로
지유롭게 여러분들이 아시는 역사 내용 올리거나 다른 분들이 올린 역사 내용 교차검증 해주시는 등 자유롭게 올리거나 보시면 됩니다~!
갈라파고스거북
전쟁이야기 - 제1차 불런전투 3편 스톤월 잭슨의 등장
전투의 중심은 헨리 힐로 옮겨갔다. 남군은 북군의 거센 공격을 받으며 여러 차례 밀렸지만, 지원군이 도착하면서 방어선을 다시 구축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버지니아 군사학교 출신의 토머스 J. 잭슨 준장이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강력한 방어선을 형성했다. 버지니아의 기병 장교 버나드 비 장군은 잭슨의 부대를 가리키며 병사들에게 “돌담처럼 서 있다”는 뜻의 말을 했다고 전해지며, 이후 잭슨은 ‘스톤월 잭슨’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북군은 헨리 힐 일대에서 남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려고 반복해서 공격했지만 남군은 버텨냈다. 특히 남군의 증원 병력이 계속 도착하면서 전투의 양상이 바뀌었다. 오전까지 우세했던 북군은 점차 공격력을 잃었고, 남군은 반격할 수 있는 병력을 확보했다. 전투는 이제 북군이 남군의 수도로 진격하는 싸움이 아니라, 북군 자체가 전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었다. 드디어 등장한 남군의 영웅 '스톤월' 잭슨장군!
2026.09.28 오전 10:17 · 조회 수 1
갈라파고스거북
전쟁이야기 - 제1차 불런전투 2편 맥도웰의 우회공격
맥도웰은 정면으로 불런 강을 건너기보다 남군의 왼쪽 측면을 돌아 공격하는 작전을 세웠다. 북군 일부가 스톤 브리지 부근에서 공격하는 동안 주력 부대가 북쪽으로 크게 우회하여 서들리 포드를 건너 남군의 측면을 공격하는 계획이었다. 1861년 7월 21일 새벽 북군의 우회 부대가 이동을 시작했고, 오전에는 매슈스 힐에서 남군과 본격적으로 충돌했다. 처음에는 북군이 병력과 화력을 앞세워 남군을 밀어붙였다. 남군의 전선은 여러 차례 후퇴했고, 북군 지휘관들은 승리를 눈앞에 두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남군 지휘관들은 시간을 벌면서 지원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셰넌도어 계곡에서 이동한 존스턴의 병력도 철도를 이용해 매너서스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북군의 공격이 예상보다 오래 걸리면서 남군은 흩어져 있던 병력을 전장에 집중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26.09.28 오전 10:16 · 조회 수 1
갈라파고스거북
전쟁이야기 - 제1차 불런전투 1편 전쟁의 시작과 불런으로 향한 북군
1861년 4월 남부연합군이 섬터 요새를 공격하면서 미국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북부와 남부 모두 짧은 기간 안에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북부의 목표는 남부연합의 수도 리치먼드를 점령하고 반란을 진압하는 것이었다. 워싱턴을 지키던 북군은 어빈 맥도웰 준장이 지휘했고, 약 3만 5천 명의 병력이 버지니아의 매너서스를 향해 진군했다. 매너서스는 여러 철도가 만나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남부군에게도 반드시 지켜야 할 곳이었다. 남군은 P. G. T. 보우리가드 장군이 지휘하며 불런 강을 따라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러나 남군의 병력은 처음부터 한곳에 모여 있지 않았다. 셰넌도어 계곡에 있던 조지프 존스턴 장군의 병력이 지원군으로 이동하면서 전투의 균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쟁사를 좋아하는 사학과 출신 유저입니다. 그동안 책과 유튜브(토전사, 역전다방 원츄)를 보며 배운 전쟁사 이야기 요약해보려 합니다!
2026.09.28 오전 10:15 · 조회 수 2
JYOONiii
발해의 바닷길
만주 벌판을 호령하던 발해가 사실 거친 동해를 건너던 뛰어난 '해양 강국'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발해는 일본과 교류하기 위해 꽁꽁 어는 한겨울에 배를 띄워 동해를 건넜습니다. 무모한 도전 같지만, 사실 겨울철 북서 계절풍을 이용하면 돛을 단 배가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일본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영하의 혹한과 사나운 파도를 뚫고 건너간 발해 사신단은 최고급 담비 가죽과 문물을 전하며 일본 조정을 매료시켰습니다. 대륙의 강자로만 알려진 발해는 바람과 바다를 완벽히 읽어낸 당대 최고 수준의 항해 강국이었던 셈입니다.
2026.09.27 오후 5:24 · 조회 수 0
JYOONiii
태종의 낙마
조선 3대 임금 태종은 사냥을 즐기다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민망했던 태종은 주위를 둘러보며 "이 일을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고 명했습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직필 정신을 가졌던 사관은 왕의 부끄러운 사고와 그 발언까지 그대로 기록에 남겼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왕이 말에서 떨어졌으나 다치지는 않았다. 사관에게 알리지 말라 하셨다'라는 문장이 또박또박 적혀 있습니다. 절대 권력을 쥔 왕조차도 역사의 기록만큼은 함부로 주무를 수 없었던, 조선 시대 기록 문화의 지독한 철학과 독립성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일화입니다.
2026.09.26 오후 4:57 · 조회 수 0
JYOONiii
고조선의 모피
단군신화로만 익숙한 고조선이 2,700년 전 고대 중국에서 최고의 '명품 수출국'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중국의 고서 <관자>에 따르면, 기원전 7세기 제나라의 정치가 관중은 고조선의 범 가죽(표범·호랑이 모피)을 희귀한 보물과 맞바꿀 만큼 엄청난 가치를 지닌 최고급 사치품으로 평가했습니다. 당시 고조선은 신화 속 나라에 그치지 않고, 동아시아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중국과 대규모 모피 무역을 벌이던 무역 강국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고조선은 신비한 옛날이야기를 넘어, 이미 국제 무역의 중심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던 경제 강국이었던 셈입니다.
2026.09.25 오후 6:12 · 조회 수 1
JYOONiii
페르시아의 낙원
천년 고도 신라가 1,200년 전 중동의 페르시아에 '지상 낙원'으로 알려졌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고대 페르시아의 대서사시인 <쿠쉬나메>에는 멸망한 페르시아의 왕자 '아브틴'이 신라로 망명해 신라 공주 '파라랑'과 결혼하는 이야기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책 속 신라는 금이 풍부하고 물이 맑으며, 외지인에게 친절한 지상 최고의 낙원으로 묘사됩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페리둔'은 훗날 페르시아를 되찾는 영웅이 됩니다. 단순한 교류를 넘어 왕실 간의 결혼까지 이어질 정도로 신라가 동서 실크로드의 종착지로서 세계적인 국제도시였음을 보여주는 신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2026.09.24 오후 7:48 · 조회 수 0
신곡
정순왕후에 대한 오해-2
또한 결국 정조의 뜻에 따라 김조순의 딸과 순조를 결혼시켰습니다 백성들의 민생도 신경썼으며 세도 정치의 주범도 아닙니다 애초에 세도정치 자체도 오래 시간 쌓인 빌드업의 산물입니다 인조 때에서 시작되어 숙종의 환국,영조의 척신 정치,정조의 건강 악화로 인해 결국 김씨에게 힘을 실어주며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그녀도 패착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그녀를 단순 악녀라고 규정할 수 없지 않을까요?
2026.09.24 오후 2:23 · 조회 수 0
신곡
정순왕후에 대한 오해
여러분은 정순왕후 하시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사도세자를 죽이게 만든 결정적 원인?정조를 암살하려 한 벽파의 수괴?정조의 모든 걸 없앤 자? 보통 학습만화에서는 정순왕후는 정조를 없애려하는 자,정조의 모든 것을 무로 돌린 속히 말하는 '쓰레기'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사실과는 조금 다른 얘기입니다 우선 정조는 사실 살아있는 동안 그녀를 크게 신뢰했습니다 또한 영조에게 세손이 대리청정을 하는 게 옳다고 한 것도 그녀입니다 정조는 죽기 전 대비를 뜻하는 수정전을 말했고요 또한 그녀의 정조의 일부 정책을 계승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노비 문서를 불태운 거죠 규장각을 축소한 것도 실제로 규장각이 너무 컸기에 다른 기관들이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었기에 줄이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게 아니죠 신유박해 또한 남인과 시파를 탄압하기 위한 것보다 황사영 백서 사건 등으로 사건이 커졌고 설령 정순왕후만 그랬던 것도 아닙니다 대원군도 그랬죠 물론 남인과 시파를 내쫓은 것이 정조의 의리 탕평에 반하는 것이지만요
2026.09.24 오후 2:18 · 조회 수 0
신곡
조선시대의 양위 소동에 관하여
양위란 군주가 후계자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일을 칭합니다. 조선시대에서 양위한 군주는 태정태단세고입니다 태조,정종,단종,고종은 반강제이고,세조의 경우 양위 후 하루만에 사망했기 때문에 스스로의 의지로 양위한 왕은 태종 혼자입니다 양위,즉 선위는 사실 고도의 정치 쇼입니다 양위를 한다는 걸 덥썩 받으면 역모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 이점을 이용해 임금의 체면을 살리고,신하들의 충성심 테스트를 하는 것이죠 선조는 왜란 이후 무너진 체면 수습하기 위해 양위 소동을 벌였으며,태종은 양위 소동을 이용해 방해되는 정치 세력을 쳐냈습니다 영조 또한 틈만나면 사도세자에게 선위하겠다하면서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양위 소동은 세자에게는 거대한 압박입니다 실제로 사도세자의 최후는 끔찍했고,광해군 또한 왕위에 오르고 토목공사 등 암군의 행위를 했습니다 또한 세자의 지지기반 등도 날아가죠 만약 양위를 진심으로 하는 경우,태종처럼 신하 등과 미리 말을 맞추거나 영조나 세조처럼 진짜 죽기 직전에 넘겨 주었죠
2026.09.24 오후 2:09 · 조회 수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