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좋아하는 사람 모여라~~
26.09.29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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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에 관한 요약, 토론 모두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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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요약 20 - 윌리엄의 잉글랜드 정복 1 1066년, 왕위 계승의 위기
11세기 중반 잉글랜드에서는 왕위 계승 문제가 심각한 정치적 갈등으로 이어졌다. 1042년 에드워드 참회왕이 즉위했지만 자녀가 없었고, 왕위 계승을 둘러싼 귀족들의 경쟁이 커졌다. 에드워드는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으며, 윌리엄은 자신이 잉글랜드 왕위를 약속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유력 귀족이었던 해럴드 고드윈슨 역시 강력한 왕위 후보였다. 1066년 1월 에드워드가 사망하자 해럴드는 잉글랜드 귀족들의 지지를 받아 왕으로 즉위했다. 윌리엄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왕위 계승권이 무시되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노르웨이의 하랄드 하르드라다도 잉글랜드 왕위를 요구하며 침공을 준비했다. 이처럼 1066년의 잉글랜드는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세력이 충돌하는 상황에 놓였다.
2026.10.02 오전 11:28 · 조회 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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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요약 19 - 로마 페르시아전쟁 10 사산 왕조의 멸망과 전쟁의 종결
로마와 페르시아의 경쟁은 7세기 중반 사산 왕조의 멸망과 함께 막을 내렸다. 651년 마지막 사산 왕조 군주 야즈데게르드 3세가 사망하면서 페르시아 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동로마 제국 역시 시리아와 이집트, 북아프리카의 상당 부분을 잃고 아나톨리아 중심의 국가로 재편되었다. 두 제국은 수백 년 동안 메소포타미아와 아르메니아, 시리아와 코카서스를 둘러싸고 반복적으로 충돌했다. 어느 쪽도 상대를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으며, 전쟁과 휴전이 계속 교차했다. 특히 602~628년 전쟁은 양국이 동원할 수 있는 인력과 재정을 크게 소모시켰고, 그 직후 아랍 정복이 시작되면서 기존의 국제 질서가 무너졌다. 로마-페르시아 전쟁은 단순한 국경전쟁을 넘어 로마와 이란 문명이 장기간 경쟁한 역사적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군사제도와 외교, 요새 건설, 교역로가 발전했고, 이후 중동의 정치와 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남겼다.
2026.10.02 오전 11:15 · 조회 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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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요약 19 - 로마 페르시아전쟁 9 로마와 페르시아의 소모전
헤라클리우스의 반격으로 로마는 잃었던 동방 영토를 대부분 되찾았지만, 오랜 전쟁은 두 제국 모두를 크게 약화시켰다. 628년 호스로 2세가 폐위된 뒤 사산 왕조는 왕위 다툼과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 새롭게 권력을 잡은 카바드 2세는 로마와 평화협정을 맺고 점령지를 돌려주었다. 헤라클리우스는 시리아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에서 로마의 지배권을 회복했다. 그러나 승리를 거둔 직후 새로운 위협이 등장했다. 아라비아에서 등장한 이슬람 세력이 빠르게 팽창하면서 두 제국의 국경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634년 이후 아랍군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공격했고, 로마군은 야르무크 전투에서 큰 패배를 당했다. 사산 왕조 역시 카디시야 전투와 니하반드 전투에서 패하면서 영토를 잃었다. 오랜 로마-페르시아 전쟁은 결국 양국을 소모시켰고, 두 제국 모두 새로운 세력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2026.10.02 오전 11:15 · 조회 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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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요약 19 - 로마 페르시아전쟁 8 602년부터 시작된 대전쟁
6세기 후반 로마와 사산 왕조의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다. 572년 전쟁이 시작되면서 양국은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전쟁은 수십 년 동안 이어졌고, 양쪽 모두 막대한 병력과 자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602년 포카스 황제가 즉위하면서 상황은 더욱 급격하게 변했다. 사산 왕조의 호스로 2세는 전임 황제 마우리키우스와의 관계를 명분으로 로마를 공격했고, 사산군은 시리아와 이집트, 아나톨리아 일부까지 빠르게 진출했다. 한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안전까지 위협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610년 황제가 된 헤라클리우스는 군사와 재정을 재편하고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그는 적의 후방을 공격하는 기동전을 펼치며 사산군을 압박했고, 627년 니네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사산 왕조 내부의 혼란이 커지면서 호스로 2세가 폐위되고 양국은 평화를 회복했다.
2026.10.02 오전 11:15 · 조회 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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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요약 19 - 로마 페르시아전쟁 7 유스티니아누스와 호스로 1세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의 로마-페르시아 전쟁은 6세기 동방정책의 핵심이었다. 527년 이후 양국은 코카서스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충돌했고, 532년에는 일시적인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540년 사산 왕조의 호스로 1세가 시리아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사산군은 안티오키아를 점령하고 약탈했으며, 로마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방어에 나섰다. 이후 전쟁은 코카서스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장기간 이어졌다. 유스티니아누스는 벨리사리우스와 다른 장군들을 활용해 여러 전선을 동시에 관리해야 했다. 결국 562년 평화조약이 체결되면서 로마와 사산 왕조는 다시 휴전에 들어갔다. 로마는 매년 상당한 금액을 지급하는 대신 국경의 평화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 협정 역시 영구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두 제국은 서로를 경계했고, 아르메니아와 코카서스의 세력 균형은 계속해서 양국 관계를 흔들었다.
2026.10.02 오전 11:14 · 조회 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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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요약 19 - 로마 페르시아전쟁 6 5세기의 휴전과 새로운 경쟁
5세기에는 서로마 제국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로마와 사산 왕조의 충돌도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다. 동방의 로마 제국은 발칸과 이집트, 아나톨리아를 유지하면서도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피하고 국경 방어에 집중했다. 양국은 때때로 아르메니아와 코카서스 지역의 영향력을 놓고 대립했지만, 중앙아시아와 북방에서 발생하는 다른 위협에도 대응해야 했다. 5세기 말 서로마 제국이 붕괴한 뒤에도 동로마 제국은 로마의 국가 체제를 이어갔다. 그러나 사산 왕조 역시 강력한 군사국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두 제국의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6세기 초 즉위한 유스티누스 1세와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에는 페르시아와의 관계가 다시 긴장되었다. 특히 라지카와 아르메니아 지역의 지배권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이때부터 전쟁은 더욱 길어지고 복잡해졌으며, 동로마의 국력과 외교 전략에 큰 영향을 주었다.
2026.10.02 오전 11:14 · 조회 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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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요약 19 - 로마 페르시아전쟁 5 율리아누스의 페르시아 원정
4세기에는 기독교를 받아들인 로마와 조로아스터교를 중심으로 한 사산 왕조 사이의 경쟁이 종교 문제와 결합하기 시작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통치 이후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의 지위가 크게 높아지자, 사산 왕조는 자국 내 기독교도를 잠재적인 친로마 세력으로 의심했다. 동시에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의 지배권을 둘러싼 갈등도 계속되었다. 샤푸르 2세는 장기간 로마와 전쟁을 벌였고, 율리아누스 황제는 363년 대규모 원정을 감행했다. 로마군은 크테시폰 근처까지 진격했지만 보급 문제와 사산군의 저항으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율리아누스가 전투 중 전사하자 후계자 요비아누스는 군대를 철수시키고 사산 왕조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 조약으로 로마는 일부 동방 영토를 포기했고, 국경은 다시 조정되었다. 4세기 전쟁은 양국이 서로를 쉽게 제압할 수 없음을 확인시켰다.
2026.10.02 오전 10:51 · 조회 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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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요약 19 - 로마 페르시아전쟁 4 발레리아누스의 포로
사산 왕조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로마는 3세기 중반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샤푸르 1세는 로마의 혼란을 이용해 메소포타미아를 공격했고, 260년에는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에데사 전투에서 패배해 포로가 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는 로마 역사에서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로마는 곧 반격했다. 팔미라의 지도자 오데나투스가 사산군을 공격해 동방의 로마 영토를 회복하는 데 기여했고, 이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제국을 다시 통합했다. 3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동방 방어를 강화하고 국경의 요새와 행정 체계를 정비했다. 298년 갈레리우스가 사산군을 격파하면서 로마는 유리한 조건을 확보했다. 니시비스 조약으로 아르메니아에 대한 로마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메소포타미아 일부도 로마에 넘어갔다. 그러나 이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2026.10.02 오전 10:51 · 조회 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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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요약 19 - 로마 페르시아전쟁 3 사산 왕조의 등장
3세기 초 파르티아를 무너뜨리고 사산 왕조가 등장하면서 로마의 동방 전선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224년 아르다시르 1세가 파르티아의 마지막 왕조를 무너뜨리고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세웠다. 사산 왕조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옛 영토와 권위를 계승한다는 의식을 내세우며 메소포타미아와 아르메니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했다. 로마와의 충돌도 곧 시작되었다. 230년대 사산군은 메소포타미아의 로마 영토를 공격했고, 로마 황제 알렉산데르 세베루스가 원정에 나섰다. 이후에도 양국은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사이의 도시와 요새를 둘러싸고 싸웠다. 이 시기부터 전쟁은 단순한 국경 분쟁을 넘어 두 제국이 서로의 세력권을 인정받기 위해 벌이는 장기적인 경쟁으로 발전했다. 특히 아르메니아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전쟁터가 되었다.
2026.10.02 오전 10:51 · 조회 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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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요약 19 - 로마 페르시아전쟁 2 트라야누스의 동방 원정
로마와 파르티아의 대립은 로마 제정이 시작된 뒤에도 계속되었다. 서기 1세기에는 아르메니아의 왕위를 누가 지배하느냐가 핵심 문제가 되었다. 네로 황제 때 로마 장군 코르불로가 동방으로 파견되어 아르메니아를 둘러싼 전쟁을 벌였고, 결국 로마와 파르티아가 타협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정리했다. 이후 트라야누스 황제는 보다 공격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113년 그는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를 공격해 수도 크테시폰까지 점령했고, 페르시아만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정복지는 넓었고 반란이 잇따르면서 로마의 지배는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하드리아누스는 즉위 후 트라야누스의 정복지를 포기하고 유프라테스 방어선으로 물러났다. 이 과정은 로마가 동방에서 영토를 넓히는 것보다 기존 국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2026.10.02 오전 10:50 · 조회 수 1

